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할 때 법관들에게 보낸 대외비․친전 이메일 내용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2010년 1월경에 뒤늦게 외부에 유출된 후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법원장이 어느 정도까지 법관의 재판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 언급하고 지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재판의 독립 문제에 대한 논란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법원 내부에서의 논의 내용이 여과 없이 외부나 언론에 알려지고, 사법부 내부에 분란이 생겼다거나 법관 사회의 보혁 대결이 본격화되었다고 과장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일부 법관들은 사법부 내부애서의 논의와 토론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법원 외부세력과 연계하거나 언론을 통하여 정치 이슈화함으로써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시도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법원 내부의 문제가 실시간으로 외부에 알려져 정치 문제가 되고 과장 보도되었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판사회의 등을 통한 법원 내부의 논의가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성급하게 외부에서 조사에 개입하려 하거나 내부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견강부회 격으로 평가해버리거나, 또는 심지어 신 대법관의 사퇴까지 운위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행태는 그 자체로 사법권 독립을 저해하는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은 물론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법부 내부의 문제는 사법부 자체의 역량과 그 건강성에 의하여 스스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행정권의 범위 문제도 원칙적으로 사법부 내부의 문제이다.
사법행정권의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은 사실 어렵기도 하다.
가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소관은 법원의 ‘사법행정’에 관한 사항인데(국회법 제37조 제1항 제2호 마목), 법사위에서도 사법행정사항과 재판사항 사이의 구별이 그다지 명확한 것은 아니다. 재판을 하는 법원에서 사법행정은 재판작용과 직․간접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재판절차’에 관하여 본다면 소송절차 진행의 전국적 통일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된 각종 대법원규칙이나 재판예규가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서, 신 대법관이 보낸 이메일도, 법원장의 입장에서 재판절차의 통일성 도모를 위한 자신의 의견이나 선배법관으로서의 생각을 사신(私信) 형식으로 조심스럽게 피력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받아들이는 개개 법관의 입장에 따라서는 근무평정권을 가진 법원장의 재판에의 개입으로 볼 소지도 있어, 사법행정의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리 판단이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사법행정권의 행사 범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규범화하여 명확히 정립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 동안 일선 법관들이 상급자나 사법행정당국의 압력 행사나 재판 간여로 느꼈던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분석하고, 법원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면 그와 같은 기준 설정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관들은 사법행정권이든 외부 권력이나 세력이든 여론이든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어떠한 시도가 있더라도 그 앞에서 굳건한 용기와 소신을 가지고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당당하게 재판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봉사한다는 기본명제를 항상 되새겨보아야 한다.
재판의 독립이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법관의 독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진대, 때로는 재판의 절차는 물론이요 실체에 대해서도 선배나 동료의 의견이나 지혜를 널리 구함으로써 자신의 최종 판단이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가지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겸손한 자세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