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 인구 편차 2:1 기준을 제시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몰고 온 파장은 깊고도 넓다. 이 기준을 관철하면 어떤 구(區)는 3명을 뽑고 어떤 곳은 6개 군(郡)에서 1명을 뽑게 된다. 국회의원은 법리적으로는 국민의 대표이지만, 단원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는 지역의 대표다. 2:1 기준은 지역 대표성을 현저히 약화시킨다. 재판관 3명 반대의견의 논거다.
아무리 헌법상 ‘인구비례의 원칙에 따른 투표가치의 평등’이 중요하다고 해도, 지역 정서와 역사·전통이 다른 여러 군을 강제로 묶는 것에 대한 지방의 반대여론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역 대표성 확보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증원이나 비례대표 축소로 지역구를 늘리는 방안, 소선거구제를 도농(都農) 복합 선거구로 바꾸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표의 등가성(等價性)도 지키면서 지역 대표성도 담보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직선거법 제25조 제1항은 선거구 획정시 ‘인구·행정구역·지세·교통 기타 조건’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민등록인구만이 유일한 기준이 아니다.
외국법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계수(繼受)하면 우리 현실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인권도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 사이의 어느 지점에 그 좌표가 위치한다. 우리나라에는 주민등록 말고 가족관계등록(옛 호적) 인구가 따로 있다. 대법원은 지난 달 사상 최초로 가족관계등록인구를 발표했다. 전남의 경우 주민등록은 190만 2,350명이지만 가족관계등록은 485만 59명이다. 경북은 270만 3,929명 대 626만 6,724명이다. 이는 지난 50여년에 걸친 압축성장의 결과로 산업화·도시화의 현대사가 만들어낸 한국적 특수성이다. 학업과 직장 때문에 고향을 떠났으나 고향에 등록기준지(본적)를 그대로 둔 출향인의 애향심을 지역 대표성 확보를 위한 제도 설계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깊이 고민해볼 문제다.
공직선거법 제25조의 ‘인구’란 주민등록인구만을 의미한다고 제한해석을 할 이유도 없다. 가족관계등록인구도 또 하나의 인구다. 공직선거법 제25조의 ‘기타 조건’에 속한다. 주민등록이 우월하다는 법리도 없다. 민법 제18조는 ‘주소(생활의 근거 되는 곳)는 동시에 두 곳 이상 있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생활하는 사람은 민법상 주소가 두 곳이다. 그 중 한 곳에 주민등록을 한다. 주민등록은 행정목적을 위한 하나의 편의장치일 뿐이다.
주민등록과 가족관계등록을 함께 고려하여 인구 기준과 지역 대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안은 없을까? 유권자에게 선택권을 줌으로써 제3의 ‘선거인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유권자가 선거 180일 전에 주민등록지·등록기준지·출생지 중에서 선거구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종전처럼 주민등록지에서 투표하면 된다.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시·군 별로 ‘선거인명부’를 만들고, 이 ‘선거인구’를 가지고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면 평등선거 원칙도 지키면서 지역 대표성도 관철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어차피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전국 어디서 선출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등록기준지·주민등록지·출생지는 모두 전산화되어 있다. 사전투표제 시행으로 전국 어디서나 투표를 할 수 있다. ‘선거구 선택제’를 실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러 시·군을 묶는 현 제도 하에서는 선거 때마다 소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열패감에 사로잡힌다. 어디까지나 ‘1시·군 1국회의원’ 원칙이 이상적이다. 주소-선거적(選擧籍) 복합형 선거구 제도를 도입하면 주민등록인구 4만명에 불과한 군(郡)도 ‘선거인구’ 20만명의 독립 선거구가 될 수 있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이버 선거인(選擧人)이 선출한 국회의원은 지역구 행사보다 국정에 더욱 전념할 수 있다. 선거운동도 확성기로 상징되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인터넷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뒷받침을 받는 한국형 선거제를 통해 헌재가 던진 파장을 수습해야 한다. 국회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도시와 농어촌,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선거제도를 설계하기를 기대한다. (중앙SUNDAY 2014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