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배임죄를 목적범으로 개정하자

배임죄를 목적범으로 개정하자


경제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쓴 책 대한민국 금기 깨기(쌤앤파커스, 2021)를 읽다보니법률가인 필자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 하나 있어 먼저 소개한다.

기업가를 위축시키는 과잉처벌 조항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예를 들어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적용범위가 너무 넓어 새로운 시각과 법률상의 정리가 필요하다.”(140-141).

과연 배임죄를 규정한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라고 되어 있다. ‘임무위배가 무엇인지는 이현령비현령일 수 있다대법원판례도 저축은행의 부실대출이 배임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인 사건에서 당연히 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면 배임죄가 성립한다.”라고 판시하였다(200914464). 동어반복이고 너무나 추상적이다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부실대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저축은행 관계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이 조문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이른바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못 받는 수준의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저축은행을 찾아가서 고금리에 대출을 받아 가는데그런 기업은 담보가 부실할 수밖에 없고 저축은행의 대출심사도 관대할 수밖에 없다그렇지만 저축은행은 그 기업의 현황과 장래성을 나름대로 평가해서 대출을 하였는데결과적으로는 부실채권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이러한 부실대출에 대해 저축은행 임직원이 배임죄로 기소되었을 때위 대법원판결의 판시사항을 보면 행위규범이나 재판규범으로 쓸 만한 명확한 기준은 사실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저축은행 임직원의 업무수행 행위가 어느 정도 수준이면 배임죄로 처벌되는 것인지 모호하다배임죄 재판은 그래서 판사에게도 어렵고무죄율도 높다.

배임죄의 양형기준은 이득액에 따라 상당히 높은 형벌을 가하도록 정해져 있다특별감경인자가 없는 기본구간의 경우 이득액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은 징역 47, 300억원 이상이면 징역 58년이 권고형량이다.

그러나 경영판단의 원칙을 고려하여 배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지 아니한 채다시 말하면 임무위배 행위에 대한 해석기준을 종전처럼 넓게 하여 실무 운영을 하는 상태에서 이득액을 기준으로 양형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구체적 타당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고경제주체의 경제·경영 활동을 부당하게 제약할 수 있다.

저축은행이 기업체에 300억원을 부실대출을 하였는데 그것이 배임이라면 징역 5-8년이 기본양형이다부실대출이 배임인지 여부가 모호할 수밖에 없는데도 그렇다.

과거에 기업인의 배임에 대해 온정적이라고 비판받았던 법원은 요즘에는 확연히 달라졌다기업인들이 경영상 행위에 대해 배임죄로 기소되고 엄한 형벌을 선고받는 경우가 늘어났다국회에서는 경제민주화 흐름에 편승하여 배임죄의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인 경우 징역 15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하는 이상한 법률안까지 등장하였다.

배임의 기준을 제대로 설정하고 유·무죄 판단을 엄정히 한다는 전제가 충족된 후에 엄정한 양형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순서이다.

이제 선진법치국가의 입법례를 면밀히 검토하여 배임죄의 구성요건을 정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일본만 해도 우리나라와 다르다일본 형법 제247조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한정하고 있다즉 목적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배임죄를 목적범으로 개정하는 수준으로만 정비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법률신문 2024년 1월 2일자)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황정근

등록일2024-01-02

조회수5,754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

휴일과 야간에도 잠들지 않는 법정

존경하는 제주지방법원 최인석 원장님은 직접 소액재판을 담당하고 있는데, 야간 재판을 시행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뉴스를 오늘 보았다. 우리나라 재판제도 중 가장 성공적인 제도를 꼽으라면 소액재판이다. 1973년 9월 1일부터 시행된 소액사건심판법은 90% 이상의 민사소송사건을 간이한 절차에 의하여 처리함으로써 신속한 분쟁해결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판결이유..

Date 2017.09.01  by 황정근

심불의 추억(2)

대법원과 관련하여 변호사들이나 국민들에게 개혁방안 중 단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심리불속행 제도일 것이다.심불 제도를 존치한다고 하더라도, 심불을 해서는 안 되는 중요 사건을 무더기로 심불 처리하면 어떻게 할까?대법원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하면 어떻게 구제받을까?실제로 심관은 상고이유가 ‘헌법위반’ 단 하나뿐인 사건에서 심불기각 판결을 ..

Date 2017.08.13  by 황정근

[검‧경 수사권 조정, 군사법원법에 해답이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군사법원법에 해답이 있다] 1961년 군사혁명 당시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군인 숫자가 민간인 유학경험자 수보다 많았다. 박정희-김종필-전두환-노태우 모두 미국에서 유학을 한 군인들이었다. 김종필 회고록을 보면 625전쟁 중임에도 미국 유학을 떠났고, 1950년대 미국의 번영을 직접 목격하고 대한민국을 그런 선진국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다짐..

Date 2017.07.22  by 황정근

70주년 제헌절부터는 <헌법의 날>로

[제헌절 단상 - 70주년 제헌절부터는 <헌법의 날>로!]심관이 일본 최고재판소와 도쿄지방재판소를 업무차(=국민 세금으로 놀러간 것이 아님) 방문한 것은 1997년 5월, 딱 20년 전이다. 그 때 보니 일본은 마침 헌법시행 5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기획 행사가 있었다. 총리부(總理府) 주관으로 도쿄 도심의 황궁 옆 국립공문서관에서는 1997년 5월 1일부터 보름 동안  `..

Date 2017.07.17  by 황정근

법관의 제일 덕목, 겸손

법정 안에 있는 소송관계자 중에서 사실관계와 가장 멀리 있는, 어떻게 보면 실체진실과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법관이 자신이 사건을 가장 잘 아는 것으로 자신만만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짜놓은 논리에 빠지면 당사자들 앞에 오판이 생깁니다.재판관은 자신이 가장 사실관계를 모른다는 겸손함을 견지하고 소송당사자의 주장을 세심하게 경청해야 그나마 오판을 줄일 수 있습니..

Date 2017.07.17  by 황정근

북핵 해법은 '부저추신(釜底抽薪)'

부저추신(釜底抽薪)ㅡ  내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하도 답답하여, `북핵 무력화 방안`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북 핵과 미사일을 虛로 만드는 무력화 비밀병기(방책)를 찾아야 하는데, `압박과 제재 및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것이 수사학으로는 그럴싸 하지만 실효성이 없고 사실은 허망합니다.성균관대 유필화 교수님의 <승자의 공부>를 읽으면서 힌트를 ..

Date 2017.07.11  by 황정근

'책임총리' 운용 방안 - 2016년 10월 29일

`책임총리` 운용방안                                     □ 대통령과 국회로부터 二重的 信任에 기초한 ‘새로운 총리’觀 1 대통령의 命을 받아 행정각부를 統轄 : - 현재의 정국상황에 따라 대통령과 권한분점 필수 2 대통령과 국회에 대한..

Date 2016.10.29  by 황정근

북핵에 대한 상응조치

대한민국의 안보 및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책임진 분들에게 묻습니다.북핵에 대해 그것에 딱 맞는 상응조치(correspondent measure)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세요.대통령님,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얻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소서.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비상시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이 시기에 비상한 대책, 북핵에 상응하는 조치는 무엇일..

Date 2016.09.12  by 황정근

국회위원 300명, 로마 원로원 의원 300명

`새 국회가 일할 4년은 참으로 중차대한 시기다. 300명 선량들이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Leonidas)가 이끌던 전사들처럼 테르모필레(Thermopylae) 협곡에서 순직할 각오로 일해 주길 기대한다.` -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동아일보 2016년 5월 7일자 칼럼).  레오니다스의 전사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와 같은 300명이라는 것이다. 고대 로마 원로원 의원도 300명..

Date 2016.05.08  by 황정근

케이블카에 대한 발상의 전환

케이블카에 대한 발상의 전환 -스위스 2,470대 vs 대한민국 115대.  `통영시 미륵산 케이블카 8년 만에 1000만명을 돌파` 뉴스를 보면서 `창조적인 역발상`과 `건설적 파괴`가 경제를 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국토의 70%가 넘는 울창한  산을 가진 우리나라도 발상을 전환하여 그린벨트 규제 완화 및 케이블카 설치 확대로 나아가야 합니다.&nbs..

Date 2016.04.25  by 황정근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결과에 대한 단상

국민은 역시 위대하다, 무섭다 : - 정치권 특히 여당에 대한 ‘민란 수준의 절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기권과 투표로 표출- 국회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국민은 역시 현명한 선택과 심판을 했다.- 국민의 삶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제도는 국가의 핏줄이다. 그것을 미래지향적으로 만드는 국회는 중요한 기구다.   20년 만의 3당 정립(鼎立) : ‘스윙 보터’ 제3당..

Date 2016.04.14  by 황정근

변호인에게 형사판결문을 안 보내주는 대한민국

형사소송규칙 제148조는 “법원은 피고인에 대하여 판결을 선고한 때에는 선고일로부터 14일 이내에 피고인에게 그 판결서등본을 송달하여야 한다. 다만, 불구속 피고인과 형사소송법 제331조의 규정에 의하여 구속영장의 효력이 상실된 구속 피고인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송달을 신청하는 경우에 한하여 판결서등본을 송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7년 1월 1일 시행된 형사소송..

Date 2016.04.13  by 황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