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CFO, CTO는 이제 일상화된 용어가 되었는데, 아직 CHO ‘최고행복책임자’(Chief Happiness Officer)라는 말은 어색하다.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스의 CEO 월트 프리즈는 스스로를 ‘최고행복책임자’(Chief Euphoria Officer)’라고 부른다고 한다. 구성원과 고객의 행복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자부심인가? 이 말이 단순한 형용수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행복이란 참 주관적이며 상대적이어서 모호하다. 사랑이란 말처럼 거대한 추상성의 덩어리다. 실로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과 잣대 위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고 동의하는 행복감(euphoria)은 분명한 느낌으로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회사 안에 탁아소를 대폭 확충하는 회사, 육아휴가를 넉넉히 주는 회사, 퇴직한 임직원에게까지도 그 비싼 대학등록금을 지원해주는 회사, 또는 중소기업의 영역을 넘보지 않고 오히려 상생에 앞장서는 대기업을 이끄는 CEO는 분명 ‘최고행복책임자’일 것이다. 최고의 품질로 최고의 명품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클라이언트’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집단적 이념의 시대를 통과했다. 기호와 취향의 시대가 되었다. 기업이든 정부든 어느 조직이나 최고책임자가 구성원의 창의력과 자율을 무시하고 무거운 짐만 지워서는 행복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배려와 존중과 품격의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성장과 발전, 활력과 역동성도 좋지만, 이제는 거기에 행복의 가치를 버무릴 때가 되었다.
행복은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환영일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마약처럼 말이다. 그래서 행복이란 명제가 허위의 지배논리가 되기도 한다는 비판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이 땅에 최고행복책임자를 표방하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이 시대에는 국정 최고책임자도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 노령화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최고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최고행복책임자여야 한다. 이제 누구에게나 행복한 세상, 행복한 나라, 서민행복, 행복국가, 이런 것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정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