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urt-packing
ㅡ 대법관정원조작
미국 연방대법원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합친 곳이다. 그러니 중요 판결이 내려지면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도 대법원판결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다.
2010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 신년국정연설에서 당시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5명의 대법관이 맨 앞줄에 앉아 있었음에도 기업의 선거광고를 허용한 대법원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그 후 대학강연에서 “누구라도 대법원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상황, 분위기, 예의의 문제도 있다.”고 일갈하였다. 한 마디로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대통령이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하버드대 동문임에도 악연도 있다. 로버츠 상원 인준 때 오바마는 그가 강한 자 편을 위해 능력을 발휘한 로펌 변호사였다고 반대했다.
최근에는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인종 우대 정책)과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등에서 연방대법원은 보수 성향의 판결을 내렸다.
공화당 출신 트럼프 대통령을 거치면서 현재 대법관 구성은 보수 대 진보가 6 대 3으로 기울어져 있기에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다.
이에 집권 민주당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민주당은 종신인 대법관 임기를 18년으로 제한하는 법안과 정원 9명을 13명으로 늘이자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이런 법률안이 통과될 가능성을 점치기 위해 역사를 되돌아보자.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재임한 민주당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른바 ‘court-packing’(대법관정원조작) 파동이다.
그는 대법원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찰을 일으켜 역사의 웃음거리가 된 바 있다.
학자들은 역대 대통령을 평가할 때, 위대한(great) 대통령, 훌륭한 대통령, 보통 이상의 대통령, 보통의 대통령, 보통 이하의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으로 등급을 매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이 등급에 따라 평가한다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듯이, 링컨 대통령, 워싱턴 대통령과 함께 ‘위대한 대통령’으로 흔히 분류된다.
그런데 그 유명한 루즈벨트 대통령도 사실은 재임 중에 의회를 통과한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역사상 최대인 무려 372번이나 행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취임사에서 밝힌 이른바 뉴딜정책의 수행에 필요한 각종 법률안을 통과시켰으나,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진 대법원은 이에 대해 번번이 위헌판결을 함으로써 행정부의 정책수행과 입법부의 입법도 헌법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선언하였다.
이에 격분하여 이성을 잃은 루즈벨트 대통령은 ‘court-packing’이라고 조롱받는 비상대책을 성급하게 꺼내 들었다.
민주당은 종신제 대법관 9명 중 70세가 되면서 10년 이상 근무한 대법관이 나올 때마다 1명씩을 추가 임명하여 최대 15명까지 증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그 의도야 너무나 명역관화하다. 내 생각과 비슷한 대법관을 추가 임명함으로써 나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법관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라고 차마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위 법안은 물론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의회는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률을 위헌선언하는 대법원이 미웠겠지만, 그렇다고 그 틈바구니에서 난데없이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에는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삼권분립의 정신이 살아 있는 건전한 민주주의 선진법치국가의 모습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미국이기에 2023년판 ‘court-packing’은 실패할 것이다. (2023년 7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