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의 인사청탁을 거절한 장관의 기개
- 에드윈 M. 스탠턴 전쟁장관의 경우
1862년 남북전쟁이 계속 중일 때였다.
공화당 에이브러햄 링컨 내각의 초대 전쟁장관 사이먼 캐머런이 워낙 무능하고 부패하자 링컨 대통령은 그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링컨의 멘토 윌리엄 슈어드 국무장관과 새먼 체이스 재무장관은 전쟁시기의 전쟁적임자로 에드윈 M. 스탠턴(1814~1869) 변호사를 추천했다.
스탠턴은 잘 나가는 변호사 시절 ‘밀수확기 소송’에서 공동 대리인이었던 시골변호사 링컨 변호사를 왕따 시켜 앙금이 있었던 인물이었고, 전임 민주당 정권(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의 마지막 법무장관이었음에도, 링컨은 정쟁을 승리로 이끌 유능한 전쟁장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탠턴을 선택하였다.
어떤 남자가 영부인 매리 링컨이 써준 공직추천서를 들고 스탠턴 전쟁장관을 찾아와서 공직을 달라고 요청했다.
스탠턴이 만나본 그는 도저히 공직자 감이 아니라서 그냥 쫓아냈다. 그리고는 영부인을 찾아가서 일갈했다.
“국가의 존립이 달린 큰 전쟁 한 가운데서 내 첫째 임무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당신의 남편과 당신의 체면을 지키는 것은 그 다음에 할 일입니다. 내가 당신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자격도 없는 사람을 임명한다면 그건 모든 이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 것입니다.”
영부인은 다시는 스탠턴에게 인사청탁을 하지 않았다.
이 유능한 스탠턴은 전쟁장관으로서 분골쇄신하여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그랜트 대통령 때 본인이 원래부터 원했던 대법원장에 지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