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은 의뢰인을 ‘클라이언트’라고 부른다. 클라이언트는 광고업계에서 광고주를 말하고, 사회복지, 심리요법 분야에서는 도움을 청해 상담이나 치료를 의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최근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정보를 공급하는 서버의 반대개념으로 클라이언트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클라이언트(client, 의뢰인)와 패트런(patron, 후원자)의 어원은 라틴어 클리엔테스(clientes)와 파트로네스다.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는 로마 건국 당시부터 있었다. 기원전 753년 로마를 건국한 초대 왕 로물루스는 100명의 귀족 가부장을 소집하여 원로원을 창설했다. 이들 100명이 바로 파트로네스다. 원로원은 나중에 300명으로 늘어난다. 기원전 509년 로마는 왕정이 끝나고 공화정 시대로 접어든다. 임기 1년의 집정관(콩술) 2명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로마 귀족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파비우스 가문은 어린 후계자만 남기고 일족이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가문의 귀족은 306명밖에 안 되고 클리엔테스가 4천여명이나 되었다.
로마 귀족은 부동산 소유권에 비례하여 국가에 병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데, 클리엔테스가 있어서 그것이 가능했다. 파트로네스가 경제적 위기에 처하면 클리엔테스가 함께 도왔고, 클리엔테스가 위기에 빠지면 파트로네스가 도왔다. 클리엔테스가 무슨 사업을 시작하면 파트로네스가 동료 귀족에게 부탁해서 도와주었다. 클리엔테스는 자식의 혼사, 교육, 취직, 소송 문제도 파트로네스와 상의하였고, 파트로네스는 도와주어야 했다. 파트로네스가 공직에 출마하면 클라이언트들이 나가서 표를 몰아주었다. 파트로네스의 의무는 12표법(BC449)에도 명시되어 있다.
파트로네스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한 다음 기다리고 있는 클리엔테스들을 면담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였다. 그 후에야 다른 귀족을 만나거가 다른 일을 하러 나갔다.
양자의 관계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 이상의 내밀한 관계였다. 양자 사이에는 신의(피데스)가 가장 중시되었다. 배신이야말로 최고의 악덕으로 간주되었다. 한쪽이 재판에 회부된 경우에 다른 쪽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었다.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이 막판에 이르렀을 무렵 8년 동안 갈리아 전쟁에서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던 라비엔누스는 폼페이우스 편에 붙기 위해 카이사르 곁을 떠났다. 정치적 신조 때문이 아니다. 라비엔누스는 피체노 출신의 평민으로서 조상 대대로 폼페이우스의 클리엔테스였기 때문에 신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폼페이우스에게 간 것이다. 카이사르도 이런 사정을 알기에 라비엔누스를 비난하지 않았다.
로마 귀족의 힘의 기반은 토지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귀족과 평민의 대결은,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로 맺어진 귀족-평민 세력과 그런 관계 밖에 있는 평민 사이의 투쟁이었다. 파트로네스는 클리엔테스의 수를 늘리는 데 열심이었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위임계약서에는 의뢰인이 ‘갑’이고 변호사는 ‘을’이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믿고 일을 맡기기 때문에 의뢰인이 갑이다. 예전에는 갑과 을이 바뀌어 있었던 적도 있다. 밤이건 휴일이건 휴가 중이건 갑의 요구가 있으면 이에 응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을의 숙명이다.
오늘날 신뢰재(信賴財)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일컫는다. 개인과 개인, 조직과 개인,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도 신뢰가 중요하겠지만, 신뢰가 가장 요구되는 것은 역시 위임관계인 클라이언트와 수임인(受任人) 사이에서이다.
정치인이나 공복(公僕)에게 클라이언트는 바로 국민이다.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권력은 클라이언트이자 ‘갑’인 국민이 수임인을 신뢰하고 잠시 맡긴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마치 공직자 자신이 ‘갑’인 것처럼 착각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기업에게는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바로 클라이언트이자 ‘갑’이다.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받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비로소 대기업도 지속가능하다.
‘을’은 클라이언트를 바라보고,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잃지 않고, 클라이언트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고 정성을 다하여 클라이언트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파트로네스’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클라이언트 지향의 생존방식이 아닐까. 우리 모두 “클라이언트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명언을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