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잘린 악어
황정근 변호사
주몽 신화에서 수달(해모수)은 잉어(하백) 사냥꾼이지만, 아마존 강 수달은 악어 사냥꾼이다. 천하의 악어가 수달에게 당한다는 것은 놀랍다. 민첩한 수달은 악어가 물에서 나와 이동하거나 얕은 물에 있을 때 악어 등에 올라타서 악어 위턱을 뒤에서 물고 늘어진다. 수달은 한참 있다가 내려와서 악어의 꼬리를 뜯어먹는다. 악어는 꼼짝없이 꼬리를 내주고 만다. 악어가 아파서 움직이면 수달은 다시 악어 등에 올라타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수달은 다시 내려와 악어 꼬리를 마저 잘라먹는다. 악어는 수달을 이길 전략을 진화시키지 못해 꼬리를 잃고야 만다. 꼬리 잘린 악어는 바로 ‘진화 우위’가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송병락, 「전략의 신」)
우리나라는 1995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달성한 국가만 가입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었다. 그 2년 후인 1997년 이른바 IMF 경제위기 때 우리나라는 꼬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광복 70년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그런 대로 성공의 역사를 썼다고 평가받고 있다. 세계은행의 ‘기업환경보고서 2014’에서 ‘계약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제도’ 부문 세계 2위다. 신속한 재판과 전자소송을 인정받은 결과다.
그런데 OECD가 지난 9일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OECD 34개국 중 33위로 나타났다.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은 국민의 27%에 그쳤다. 법조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아직도 차갑다.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에 달리 첩경이 있을 수 없지만, 한 가지만 들라면, 사법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재판의 품질, 수사의 품질, 변론의 품질 말이다. 자기완결성을 갖추고 있는 판결문이 반드시 당사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인 것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지 않고, 국민이 정말 가려워하는 곳을 정면으로 긁어줄 필요가 있다. 중요한 쟁점에 대해 판단을 회피하면 당사자는 실망하고 그 실망이 불신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것만은 꼭 판단을 해달라고 주장하는 중요 쟁점에 대해 논리와 근거를 대고 설득하는 판결문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국민은 법관이 법의 껍질 안에 숨어서 아주 사무적인 형식논리로 간단히 사건을 처리해버리는 테크니션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단순한 ‘경쟁 우위’를 넘어 ‘진화 우위’를 갖춰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법조계가 국민의 시선과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과거의 영화에 안주하다가는 어느 날 꼬리 잘린 악어로 전락하고 만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할 때다. (법률신문 2015년 8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