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황정근 변호사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95899
20여년 전 형사단독 때다. 조폭이 야간에 승용차로 피해자를 다치게 했다고 기소되었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후 삭제되었지만, 당시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제3조 제2항에 따르면 야간 흉기휴대 상해는 법정형이 5년 이상이었다.
첫째 의문은, 승용차가 위험한 물건에는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승용차를 운전한 경우 과연 승용차를 ‘휴대’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였다. 힘센 장사가 승용차를 들어서 던지거나 확 밀어 상해를 가했다면 모를까, 차 안에서 핸들을 잡고 있었는데 어떻게 차를 휴대했다는 말인가? 휴대(携帶)란 ‘손에 들거나 몸에 지니는 것’을 일컫는 말이지 승용차를 운전하는 경우까지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원칙에 반하는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 끝에 일부무죄를 선고했다.
몇 달 후 항소심 재판장이 전화를 해왔다. ‘대법원판례가 휴대란 소지 외에 이용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인데(84도2001), 당신, 그 판례 알고도 판례 바꾸자고 그런 판결을 했느냐’는 질문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판례를 모르고 판결했다고 이실직고했고, 항소심에서 내 판결은 바로 파기되었다. 사실 더 부끄러운 것은 헌법적 감수성이 부족하여 당시에 제3조 제2항에 대해 위헌제청신청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점이다.
지금도 판례는 자동차 이용도 휴대라고 한다(2002도5783). 나는 납득할 수 없다. 9·11테러처럼 항공기를 조종한 경우도 휴대라고 해야 할까? 법원은 죄형법정주의원칙에 충실하게 휴대에는 운전이나 이용이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하고, 자동차·항공기 이용 폭력행위도 가중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 국회가 ‘휴대하거나 이용’으로 법을 개정하여 대처하는 게 순서다.
문제 많은 폭처법 관련 조문에 대해 위헌결정이 나고 또 수시로 개정되어 폭처법으로 처벌할 사안은 이제 전보다 많이 줄었다. 시대적 역할을 다한 폭처법을 그래도 살려둔다면, 차제에 음주폭력을 가중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어떨까? 다시 말하면 혈중알콜농도 0.05% 이상의 주취 상태에서 폭력행위를 한 자를 가중 처벌하고, 주취 상태에서 폭력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대한 음주측정의무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은 갈등대국·폭력대국·음주대국이다. 사회갈등지수가 2013년에 OECD 27개국 중 2위다. 2009년에는 4위였다. 2010년 인구 10만명당 폭력 발생 건수는 609.2건으로, 미국 252.3건의 약 2배, 일본 50.4건의 12배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도한 음주 탓이다.
더 늦기 전에 음주폭력에 어떻게 대처할지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극약처방으로 음주폭력을 가중 처벌하는 입법도 검토할 만하다. 술에 취했으니 형을 깎아달라고 하자 성폭력범죄에는 주취감경을 금지하는 법도 만든 우리나라이니, 그 정도 입법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