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공백 사태를 우려한다
변호사 황정근
지난 11월 13일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보내야 하는 법적 시한이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국회가 선거구획정안(공직선거법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하여야 하는 시한인 11월 13일을 어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정쟁에 따라 일정이 어긋나면 이러다가 예비후보등록 개시일인 12월 15일이 되어도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정치권이 전에도 갑론을박 끝에 선거일 1-2개월 전(17대 2월 27일, 18대 2월 15일, 19대 2월 27일)에야 가까스로 선거구를 획정했던 악습이 이번에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일단 현행법에 따라 12월 15일부터 예비후보등록을 할 수는 있지만, 12월 31일이 지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연말까지는 “새 선거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연말이 지나면 선거법 ‘별지 1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구역표’가 실효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30일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결정 주문(主文)은 이렇다. ‘선거법 별표 1 국회의원지역선거구구역표는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이 구역표는 201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올 연말까지 인구편차 2 대 1을 원칙으로 한 ‘새로운 선거구’ 구역표를 담은 선거법이 시행되지 않으면, 선거법 <별표 1>은 위헌 규정으로서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되므로, 2016년부터 대한민국에는 국회의원 선거구 구역표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년 1월 1일부터는 선거구도 없어지고, 예비후보등록을 할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도 존재하지 않아, 어디에서 예비후보자 등록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12월 15일부터 연말까지 이미 예비후보등록을 한 입후보예정자도 새해부터는 존재하지도 않는 선거구의 예비후보자이어서, 그 법적 지위가 유효한지도 문제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국회에서 개정 선거법을 통과시켜 새해부터는 ‘새 선거구’가 시행되도록 해야만 한다.
만약 연말까지 ‘새 선거구’가 시행되지 못하는 경우에 그 입법공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미리 검토해보아야 한다. 선거구 공백은 일종의 국가적 비상사태다. 필자는 대통령이 대통령긴급명령권에 기하여 ‘새 선거구’를 선포하는 길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선거구 공백을 막는 일은 가장 시급한 현안이므로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헌법 76조)의 형태로 전격 실시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긴급명령권은 1993년 8월 12일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금융실명제) 이후에는 발동된 적이 없지만, 선거구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부득이한 임시조치로서 정당화된다.
문제는 발동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다. 헌법 제76조 제1항은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가로막혀 여·야 합의가 없으면 사실상 선거구 법률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헌법상 요건을 다소 갖추지 못하였더라도, 발령하면 일단은 법률의 효력을 가지게 되며, 그 후 여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사후 불승인 결의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나중에라도 선거일 전에 대체입법이 생기면 긴급명령은 소기의 임무를 다하게 된다.
필자가 지금 강조하는 것은 연말까지 국회가 선거구 입법을 하지 못하는 만약의 사태를 미리 막자는 것이지, 대통령 긴급명령권 발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