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개헌 4원칙
변호사 황정근
개헌론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4·13 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되고 아직 여·야 통틀어 압도적인 유력 대권후보가 없는 상황이 이번에는 개헌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여론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13일 제20대 국회 개원식에서는 정세균 국회의장도 ‘개헌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거들었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우윤근 전 국회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되는 등 국회와 정당 차원에서는 개헌 적극 추진파가 늘어나고 있다.
국민여론도 과반수 이상이 개헌에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경제살리기를 이유로 개헌을 정국의 블랙홀로 여기며 극력 반대해온 박근혜 대통령도 사실은 2000년부터 개헌을 주장했다. ‘권력구조 개편과 생존권적 기본권 확충을 위한 개헌’이 지난 대선 때의 공약이었으므로, 박대통령도 향후 여론의 향배와 정국 상황에 따라서는 개헌 지지·추진 쪽으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나 국민들 사이에서도 ‘1987년 헌법’을 30년 시행하면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개헌은 추진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여·야가 협치의 정신을 살려나간다면 개헌은 절차적으로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자문기관인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국회에서 개헌특위(헌특)를 구성해서 논의하면 된다.
앞으로 개헌을 논의하고 추진할 때 다음 네 가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첫째, 정치권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개헌’이 되어야 한다. 개헌은 예컨대 국회·정당의 권한이나 키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개헌이 국민의 동의 정치적·정략적·당파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을... 개정한다.” 27년 전인 1987년 10월 29일 공포된 현행 대한민국헌법 전문(前文)의 일부다. 주어가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대한국민’이다. 개헌은 바로 국민이 하는 것이다. 언제 개헌을 할 것인가도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헌법개정권력은 어디까지나 국민에게 있다.
둘째, 개헌은 정부의 협조 하에 국회가 여·야 합의로 해야 한다. 헌법상 국민의 대표인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와 대통령에게 개헌 발의권이 있다. 대통령이 반대한다고 해도 국회의 개헌발의를 막을 수는 없다. 국민여론이 개헌에 적극적인 이상, 어느 시점에 가서는 박 대통령도, 나는 안 하겠으니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보다는, 나도 돕겠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정부도 ‘헌법연구반’을 가동하여 국회를 적극 도와야 한다. 헌특에서 여·야 갈등이 첨예화하는 것을 막고 합의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 1987년 개헌 과정에서처럼 여·야 동수의 ‘8인 정치회담’을 가동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셋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대폭 확충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기본권 확대야말로 개헌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기본권 부분은 손 볼 것이 많다. 국제적 인권 수준과 기준에 맞게 최신의 것으로 다듬어야 한다. 판례도 반영해야 한다. 기본권 분야는 헌법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면 된다.
국민의 기본권 확충을 위한 사법개혁방안도 개헌논의에 반영되어야 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통합 여부, 대법원과 상고법원의 이원화, 헌법재판의 강화, 명령․규칙에 대한 위헌심사권 일원화, 재판소원의 예외적 인정,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삭제, 선거소송의 헌재 이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외부 개방 등 사법개혁 과제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넷째, 권력구조 부분은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제도의 보완·개선에 그쳐야 한다. 현재 개헌론은 권력구조를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중 어느 하나로 개편하느냐 하는 문제, 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 지방자치·분권을 강화하는 문제 등을 중심으로 하여 백가쟁명식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 방안은 국민여론도 나뉘어 있고 정치권에서도 쉽게 타협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 바람직한 정부형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의원내각제로 바꾸려면 극심한 의견대립이 야기될 공산이 크다. 국민이 직선제 대통령을 선호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단임의 폐해를 극복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데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나, 직선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통일을, 국회 선출 총리는 내치를 맡는 혼합제로 가는 정도의 보완만 해야 한다.
헌법은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개헌이 갈등을 확대시키고 국력을 소진시키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과 국회와 정부 모두가 동의하는 ‘국민을 위한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