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헌라2
최종의견진술
청구인들 대리인 황정근
현행 제도의 변경을 초래하는 제·개정 법률안은 상위규범인 헌법에 위배되지 않고, 기존의 다른 법률과 모순되지 않으며, 법률의 용어도 명확히 사용되어야 합니다.
법사위는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통해 위헌 여부, 다른 법률과의 관계, 내부 조항 간의 충돌 유무 등을 심사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물론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는 어디까지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한하므로 원칙적으로 법률안의 내용까지 심사할 수는 없지만, 법률안의 내용이 헌법에 위배되거나 다른 법률과 상충·저촉될 때에는 국가법체계의 통일·조화를 위하여 내용도 체계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한 법사위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권은 1951년 제2대 국회 때 도입된 이래 70여년 이상 확립된 헌정관행입니다.
법사위에는 헌법과 법률에 조예가 깊은 법조인이나 법률가가 다수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체계심사 과정을 거치면 아무래도 당해 법률안의 완성도 내지 완결성이 제고됩니다.
법사위에서 법률안의 헌법정합성 검토와 법체계적 문제점 검토를 충실히 하면,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줄일 수 있고, 헌법재판에까지 비화될 소지를 그만큼 줄이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법사위가 심사를 의도적으로 지연하거나 소관 상임위의 정책내용에까지 간섭하는 등 사실상 상원으로 군림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지난 70여년 헌정사에서 법사위가 국회 내에서 일종의 입법자문위원회로서 긍정적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법사위의 긍정적 기능과 부정적 기능을 절충한 것이 국회법 제86조 제3항의 ‘소관 상임위의 본회의 부의요구 제도’입니다. 국회법 제85조의2의 ‘페스트 트렉, 신속처리안건 제도’도 있습니다.
국회법 제86조는 법사위 회부일부터 60일 이내에 이유 없이 심사를 마치지 않은 법률안에 대하여 본회의 부의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고, 국회법 제85조의2의 신속처리안건의 경우에는 이유 유무를 따지지 않고 법사위 심사기간이 최대 90일입니다.
국회법 제86조의 ‘이유 없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물론 국회 안에서 여·야가 원만히 타협하고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마땅하지만, 여소야대 극한대립의 우리 정치현실에서 이런 해법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여·야가 서로 입장이 다를 때에는 국회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슨 기구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런 해결기구가 없기에 부득이 헌법재판소에서 가이드라인이랄까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 주십사 하고 부득이 이 사건 청구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회법 제86조 제3항 소정의 ‘이유 없이’란 ‘정당한 사유가 없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불확정개념입니다.
정당한 사유의 유무를 불문하고 법사위 회부 60일이 경과하면 무조건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불합리한 결과를 막고 구체적 타당성을 실현하기 위한 법률요건입니다.
법사위가 회부일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였지만 그 기간 도과에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즉 법사위 전체회의나 법안심사2소위원회에서 통상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심사를 계속 하고 있는 때에는 본회의 직회부를 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여기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결국, ▲국회법 제86조 제3항의 목적과 기능,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제도의 입법취지 및 이 제도가 헌법과 국회법을 비롯한 전체 국가법질서에서 가지는 위치, 그 동안의 국회 입법과정의 관행, ▲다른 법률안들에 대한 법사위의 심사 경위와 관행, ▲법사위에서 당해 법률안을 상정하고 심사를 하고 있는지 여부와 그 경과 및 심사 내용, ▲당해 법률안의 내용과 그 중요성, ▲당해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의 필요성과 그 정도 및 그에 대한 심사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기간 등을 비롯하여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법 제86조 제3항 소정의 ‘이유 없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이 사건 법률안에 대한 ‘체계 심사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언뜻 보아도, 21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KBS이사회는 그 자체로 이상합니다.
‘원 밴치’를 강조하는 최고법원 구성이 대개 9명이나 13명이고, 많아야 15명인데, KBS이사회가 21명으로 구성되면 늘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방송법 개정안은 21명이나 되는 이사회 구성권을 ▲국회교섭단체 5명,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하는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 6명(지역방송 관련 학회 2명) ▲시청자위원회 4명, ▲방송 관련 직능단체 6명으로 배분하고 있는데, 거기에 무슨 합리적인 기준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예컨대 방송 관련 직능단체를 보면, 방송기자연합회, 한국피디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3개 단체만 법률안에 포함되어 있으나, 방송연기자, 아나운서, 방송작가, 성우 등이 속한 다른 직능단체는 왜 없는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개정안은 방송 또는 미디어 관련 학회를 이사 추천단체로 규정하고 있는데, ‘학회’라는 법률용어가 어디에 있습니까?
또한 개정안은 시민위원 100명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사장임명권을 제한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 과정에서 무려 100여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절차를 거치도록 한 입법례는 전무후무합니다.
이런 법체계적 문제점이 있는 법률안이 법사위에서 걸러지지 않고 그냥 본회의에서 통과된다고 한들 대통령으로서는 재의요구를 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설령 공포된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의 대상이 될 것임이 명약관화합니다.
이 사건 방송3법 법률안은 ▲2023. 1. 16.자 법사위 전체회의, ▲2023. 2. 22.자 법사위 제2소위원회 및 ▲2023. 4. 19. 공청회 등을 통하여 법사위가 통상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체계 심사를 하는 등 심사를 계속 하는 중이고, 법사위 회부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한 데 대하여 정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가 결코 아닙니다.
국회에서 법안심사 소위원회는 여·야 합의 통과를 원칙으로 합니다.
법사위 고유 법률안을 심사하는 법사위 제1소위는 물론이고 다른 상임위 법률안을 심사하는 법사위 제2소위도 늘 그렇게 운영해온 것이 관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 국회 과방위원장은 ‘법사위에 회부된 날로부터 60일이 경과’하였다는 이유만으로 2023. 3. 21. 이 사건 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가결·선포하였고, 피청구인 국회의장은 2023. 4. 27. 이 사건 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의 건을 가결·선포하였는바, 이는 국회법 제86조 제3항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입니다.
현재 법사위 제2소위에 계류 중인 다수 법률안을 보면 여·야 이견으로 60일 이상 동안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법률안이 대부분입니다. 만약 법률안의 신속처리가 필요하면 국회법 제85조의2 패스트 트랙 제도를 활용하면 됩니다.
이 사건과 같이 적어도 법률안에 헌법적 및 법체계상 문제점이 실제로 있어서 법사위 전체회의나 소위원회에서 심사를 계속 하고 있는 중일 때에는 본회의 직회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개정안에 대해서도 국회법 제86조 제3항에 의하여 본회의에 직회부되어 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사례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법사위가 60일간 단 한 차례도 심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방송3법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여소야대 국회 하에서 헌법적 쟁점과 법체계상 문제점이 법사위에서 심사되지 않고 본회의에 직회부되는 일이 자꾸 벌어지면 그 후에 기다리는 것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및 헌법재판입니다.
국회의 다수정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분쟁과 갈등을 유도하고 확대하는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입법폭주를 멈춰 세울 수 있는 곳은 헌법재판소 뿐입니다.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직회부하여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은 본회의에서 통과되었으나, 이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국회의 재의결에서 부결되어 모두 폐기되었습니다.
이 사건 방송3법의 운명도 그런 길을 걸을 것임이 능히 예상됩니다.
이 사건 방송3법 이후에는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또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최근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도 이 사건과 동일한 이유로 권한쟁의심판청구를 했습니다. 선례가 되는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분명하게 본회의 직회부 기준을 설정해 주십사 말씀 드립니다.
이 사건에서는 다행히 피청구인 과방위원장이 청구인의 법리 주장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청구를 인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