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의 운명
나는 2016년 대통령 탄핵 사건 때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 총괄팀장을 맡아 92일간의 헌법재판과정에서 메인스피커 역할을 했다.
당시 고향예천 친구가 나보고 ‘배신자’라고 욕을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탄핵 의결에 참여해서 찬성한 사람이 아니고, 탄핵 의결 후 변호사로서 탄핵 사건에서 어느 한쪽 변론을 맡은 것이다.
변호사는 어느 한쪽 대리인이 되면 그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내가 대통령의 대리인이 되었으면 대통령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직업변호사의 운명>이다.
나는 어떤 정치적 이념, 보수와 진보, 이념적 다툼으로 탄핵사건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정치사건을 주로 변론하는 변호사>다.
사실관계와 법리에 의해 의뢰인을 옹호하고 진실을 밝히고 그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 그것이 직업변호사의 할 일이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진실과 정의의 푯대를 세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내 역할은 다한 것이다.
나는 선거법, 정치관계법을 주로 변론하는 전문 변호사다.
진보 쪽 정치인이냐 보수 쪽 정치인이냐를 가려서 사건을 맡지 않는다.
탄핵 사건 후 한 번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을 변호한 적이 있다.
진보 쪽 성향의 신문기자가 전화를 했다.
“변호사님은 대통령 탄핵 사건 대리인단장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김진태 의원을 변호할 수 있어요?
황변호사님은 그 쪽인가요?”
질문은 극히 공격적이었다.
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여보시오. 기자님. 지금은 김진태 의원을 변호하지만 전에는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변호했어요. 그러면 제가 작년에는 진보 쪽이고 올해는 보수 쪽인가요? 진보 정치인을 변호하면 진보가 되고 보수 정치인을 변호하면 보수가 됩니까?”
“…….”
기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자님, 전쟁이 났을 때 국군이 다쳤건 인민군이 다쳤건 치료를 하는 것이 군의관 아닙니까? 군의관이 인민군이 다쳤다고 그냥 지나쳐야 하겠습니까?”
“…….”
“어떤 사람도 이념과 상관 없이 변호를 받을 이유는 있습니다.
자신의 법적 권리에 대하여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것이 변호사의 역할입니다.”
나는 최근 20대 국회의원 중 더불어민주당 박재호·유동수·최명길 의원을 변호했고 자유한국당 권석창·권성동·김진태·박성중·박찬우·엄용수·이완영·이철규 의원을 변호했다. 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변호했고, 무소속 원희룡 제주지사를 변호했다. 민주당 이재수 춘천시장과 한국당 박일호 밀양시장을 변호했다(이 분들은 공인이기 때문에 실명을 거론했다).
법이 이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무관하게 의뢰인 각자의 진실을 논거와 법리를 통해 밝히고 주장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다.
모두가 비난하는 사람도 그를 위한 변호를 해야 할 이유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보수와 진보의 충돌 속에 있었다.
그 불협화음은 점점 더 극단화되고 있다.
양자의 충돌 속에서 정치사건은 훨씬 뜨거운 감자가 되기 십상이다.
나는 법을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수긍하고 이해 가능한 상식.
나는 법을 밥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건강을 지켜줄 한 그릇의 밥.
정치적 이념이나 왜곡된 선입견이 아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으로서의 법을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