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각 총사퇴의 법리
- 내각 총사퇴 없는 총리 교체가 가능한가
대한민국헌법은 대통령제임에도 국회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국무총리를 둠으로써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그렇게 임명된 총리에게는 국무위원(장관) 임명제청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예컨대 사퇴하여 곧 물러날 한덕수 총리가 함께 일할 것도 아닌 신임 장관을 임명제청하는 것은 국정을 편법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에 장관을 몇 명 바꿀 때 후임 총리가 아니라 곧 물러날 한 총리가 임명제청을 한다면, 신임 홍길동(가명) 총리는 취임해도 자기가 임명제청한 국무위원이 한 명도 없는 국무회의를 주재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를 ‘홍길동 내각’이라 칭할 수 있는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처지다.
신임 총리로 하여금 전임 총리가 제청한 장관들과 함께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대통령이 총리를 수석장관 정도로 하대하는 발상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은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헌법정신의 핵심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총리가 사퇴하면 당연히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
총리사퇴는 내각 총사퇴를 동반하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신임 총리가 내각을 새로 꾸려야 한다.
교체하지 않는 국무위원은 그와 함께 일할 신임 총리가 대통령과 상의하여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형식으로 재신임하면 된다. 이 경우 다시 임명 제청하고 연임 발령을 내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인사청문을 다시 거쳐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하여 내각 총사퇴 후 연임하는 경우에는 인사청문회를 생략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제3공화국 때까지는 내각 총사퇴 관행이 잘 지켜졌다. 총리가 물러날 때는 내각이 총사퇴하고 형식상이지만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아 신임 장관과 연임 장관을 동시에 임명하였다. 그래서 연임 장관도 그 대수(代數)가 바뀌었다.
예컨대 ‘김종필 내각’이 물러나고 ‘최규하 내각’이 들어설 때 황산덕 법무장관은 연임 발령이 되었는데, 그래서 그는 제24대 및 제25대 법무장관이다(석우 황산덕 회고록 318-319면).
언제부터 ‘내각 총사퇴 없는 총리 교체’가 슬그머니 이루어졌는지 한번 조사해 보아야 한다. (2024년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