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장 공백, 미리 막아야 한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내년 1월 31일에 만료된다. 불과 두 달여가 남아 있을 뿐인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국이 혼미한 상태에서 후임자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개다가 임기 만료 직전인 내년 1월 27일부터 30일까지는 설 연휴가 끼어 있다. 인사청문회 일정을 감안하면 다음달 말까지는 인선이 완료되어 국회에 임명동의요청을 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가 비상시국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의결이 정치쟁점화되어 있고, 국회에서 200명 이상이 찬성하여 탄핵의결이 되면 헌재가 탄핵심판을 담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자칫하면 초미의 관심사인 탄핵심판의 재판장을 맡는 헌재소장이 재판 도중에 후임자 없이 퇴임하여 이정미 재판관이 소장직무대행이 되어 재판장을 이어받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탄핵재판이 장기화되면 내년 3월에 또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여 탄핵심판 도중에 재판장이 다시 바뀌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헌재소장후보자에 대해 국회임명동의요청을 철회하였을 때 헌재소장 자리는 무려 140일 간이나 공백이 생겼다. 2011년에 조용환 재판관후보자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한 후 본회의 표결을 미루다가 여당의 반대로 부결된 후 김이수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무려 1년 2개월 이상 재판관 임명이 늦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상은 국가비상시가 아니었을 때 있었던 일인데, 현재의 시국은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시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올해 4월 총선 후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처음 맞는 국회동의 대상 헌법기관장 임명에서 대통령이 만약 야당이 수용할 수 없는 인물을 헌재소장에 지명하는 경우에는 헌재소장 공백 사태가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이나 탄핵재판에서 파면결정을 하려면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재판관 9명 중 단 1인이 공석이더라도 3명만 반대하면 위헌결정이나 파면결정을 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사태를 미리 막을 제도적 장치로 대통령 산하에 헌법재판소장후보자추천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하여 가동해야 한다. 대통령과 여·야 교섭단체 및 법조계가 머리를 맞대고 실기하지 않고 후임 헌재소장이 임명되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 작금의 헌정문란의 와중에서도 헌법에 정해진 인사는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내년 2월의 이상훈 대법관 후임과 9월의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의 경우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대통령과 여·야의 협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백 사태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