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성 형사처벌-그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는가
미국 역사에서는 전직대통령을 형사처벌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문제가 많은 대통령도 가급적 그 장점을 부각하여 위인으로 만들어 후세를 가르쳤다. 중국에서도 정적을 형사처벌한 사례가 몇몇 있지만 원칙적으로 중공최고지도부 상무위원급 이상은 처벌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국격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결국은 그 집권의 정통성 문제 때문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탄핵과 형사처벌을 눈앞에 두고 사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기소되기도 전에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승계취임 후 한 달 만에 바로 사면해버렸다. 당대에는 그로 인해 포드는 재선에 실패했지만 후대 역사에서는 포드 대통령의 사면은 용기 있게 잘 내린 결정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는 유죄 확정판결 후에야 사면을 할 수 있기 때문에(사면법 제3조), 수사와 사법절차의 길고긴 과정에서 이미 전직대통령은 만신창이가 되고, 형사처벌인지 정치보복인지를 둘러싸고 극심한 국론분열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이러한 고리를 이제야말로 끊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에서는 유죄 확정판결 없이도, 기소 전이라도 대통령이 사면을 할 수 있다. 당시 전임 닉슨 대통령 사면을 할 때 포드 대통령의 고민은 형사소추 내지 유죄 확정판결 전에 대통령이 과연 사면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백악관 법률고문은 연방대법원이 1915년 ‘미합중국 대 버딕 사건’에서 이를 긍정한 선례를 찾아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 뉴욕 트리뷴의 조지 버딕 편집장의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해 사면권을 행사한 사건이다.
대한민국헌법에서도 수사 전 사면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제79조). 다만 사면법에서 판결확정 전의 특별사면을 불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조). 이번 기회에 수사나 기소 전에도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할 수 있도록 사면법을 개정하면 어떨까? 여ㆍ야 대통령후보가 사면법 개정을 내세우고 당선되면 전직대통령에 대해 수사 전 사면권을 행사해버리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전직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성 형사처벌의 고리를 끊어내는 길이다. 이것이 통합과 용서의 정치이다. 특히 야당 대통령 후보부터 이를 공개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용서와 화해의 정치로 가는 첩경이 아닐까. 만약 헌법 제90조에 따라 <국가원로자문회의>를 구성하는 경우 직전대통령이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당연직 의장이 되어야 하는데, 직전대통령을 형사처벌하고서 어떻게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기겠는가?
나는 이제는 전직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또 하나의 소원이 있다. 조선 때 사람이 아닌, 대한민국 전직대통령의 초상화가 당당히 그려진 대한민국 지폐를 보고 싶다.
※ 대한민국헌법 제79조 ①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ㆍ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②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③사면ㆍ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 사면법 제3조(사면 등의 대상) 사면, 감형 및 복권의 대상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일반사면 : 죄를 범한 자
2. 특별사면 및 감형 : 형을 선고받은 자
3. 복권 : 형의 선고로 인하여 법령에 따른 자격이 상실되거나 정지된 자